2023. 6. 11. 11:32ㆍ인문
1967년, 시카고 대학의 심리학 교수 에카드 헤스(Eckard Hess, 1916~1986)는 한 가지 놀라운 발견을 하는데, 이 발견은 전통 심리학이 사로잡힌 순응주의의 늪에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다. 발견 그 자체의 놀라운 매력 외에도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부분이 있었는데, 정상위에 따른 개인화된 관계 이론에 좀 더 무게를 실어 주었기 때문이다.
에카드 헤스는 인간의 눈에서 동공이란 부위가 우리 눈으로 들어오는 빛에 대한 조리개 역할을 한다는 걸 알았으며, 우리는 모두 햇빛을 보는 순간 동공을 수축시키고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이를 확장시키는 반사적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동공에 또 다른 기능이 있다는 건 아무도 몰랐었고, 에카드 헤스 역시 이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바로 같은 빛의 세기에서도 동공의 크기가 현저히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헤스는 우리의 동공이, 바라보는 사람과 사물에게 느끼는 끌림이나 반감의 정도에 따라 확대되었다 줄어들었다 한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이 가설은 심리학이 문화주의 도그마에 젖어 있던 당시 미국의 상황에서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간이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끌림이나 반감에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낸다는 이러한 가설을 주장한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학계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따라서 헤스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매우 엄격한 실험 결과를 얻으려 애썼다. 그는 서로 다른 성별의 학생들에게, 사물이나 사람, 여러가지 상황 등에 대한 사진 여러 장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동시에 그는 최소한의 동공 변화까지 정확하게 측정했다. 그 결과는 무척 놀라운 것이었다. 초기의 황당한 가설을 분명히 입증해 주었기 때문이다.
남학생들의 동공은 건물 사진, 풍경 사진, 특별한 감정적 의미가 없는 사물 사진 등의 앞에선 변화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섞여있던 여자의 나체 사진 한 장은 금방 동공을 확장시켰다. 반면 남자의 나체 사진은 별다른 관심을 자아내지 못했다.
여학생의 경우, 두 가지 종류의 사진이 가장 동공을 크게 확장시켰는데, 하나는 남자의 나체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미소를 짓는 아기 사진이었다. 심지어 아이를 낳아 보지 않은 여학생들이라 하더라도 상황은 같았다. 어린 아기의 사진을 보고 남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에카드 헤스는 앞선 실험 결과를 토대로 더욱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한 권의 대중서를 펴냈다. 책 제목은《우리의 눈이 이야기해 주는 것들 Les Histoires que l'oeil nous raconte》이었다. 이 책은 첫 번째 실험 결과보다 더 놀라운 사실을 밝혀준다. 인간의 성생활과 소통 방식에서 이러한 동공반사가 담당하는 역할과 기능을 설명한 것이다.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교, 양지의 감옥《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0) | 2023.06.15 |
---|---|
동성애 혐오자는 왜 동성애에 끌리는가 (0) | 2023.06.11 |
좋은 전쟁이란 없다. 그리고 나쁜 평화란 없다. (0) | 2023.06.11 |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 (0) | 2023.06.11 |
강남스타일은 득인가? 독인가? (0) | 2023.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