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은 왜 중요한가?

2023. 3. 19. 15:35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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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이 결정되는 과정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부터 복지 등 사회적 여건 그리고 개별 회사들의 사정이 복잡하게 개입된다. 1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는 매년 임금조정 실태조사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자신들이 연봉을 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답변한 것들을 모은 것이다. 그해 연봉 조정에 관한 기업의 시각이라고 보면 크게 무리가 없다. 2015년 이 조사에서 나온 결정 변수는 다음과 같다.

1. 기업 지불 능력 30.2%
2. 최저임금 인상률 20.1%
3. 타 기업 임금 수준 및 조정 결과 15.2%
4. 물가상승률 10.6%
5. 경영계 임금 조정 권고 8.1%
6. 노조의 요구 6.4%
7. 통상임금 범위 조정 5.9%
8. 60세 정년 의무화 3.4%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노조의 요구가 그렇게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는 않았고, 최저임금 인상률이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 최저임금이 얼마나 인상되었는가가 20퍼센트 넘게 주요 변수로 고려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시사점이다. ILO에서 중장기적으로 볼 때, 연봉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두 개의 요소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단체교섭과 최저임금이다. 단체교섭이야 노조가 존재하는 경우에 당연히 영향을 많이 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최저임금 제도인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생각보다 최저임금을 주요 변수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한국에서는 노조 조직력이 워낙 약할뿐더러 노조의 실질적인 사회적 영향력도 다른 OECD국가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다. 노조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닐뿐더러,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연봉 결정 과정에서도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는지, 서로 눈치 보는 요소가 노조의 영향력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강성노조가 엄청나게 영향을 미쳐서'라고 시작되는 일반적인 레퍼토리가 경총 조사에서는 별로 보이지는 않는다. 진짜로 노조의 영향력이 엄청나다면, 기업 답변의 수치가 3~4배는 높아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 그게 한국에서는 최저임금의 인상률인것 같다. 연봉 결정에 경제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노조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회적 요소의 역할은 최저임금이 대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은 기본적으로는 아르바이트 등 저소득 단기 일자리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맨 밑에 있는 일자리의 소득이 올라가면 그게 바로 위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해서 단계적으로 대부분의 연봉이 올라가게 한다고 볼 수 있다.일종의 밀어내기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경총의 조사는 그런 메커니즘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과 상관이 있든 없든,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은 노동과 관련된 이슈중에서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정된다. 일종의 '쇼'이기도 한데, 노동과 관련해서 1년 중에 가장 큰 쇼가 최저임금 결정 과정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워낙 사회적 논의 같은 것이 적고, 노조와 관련된 소식도 파업 때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전해지지, 대부분 자세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실제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거의 유일한 노동계의 쇼가 바로 최저임금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최저임금 인상률이 사회적으로 노조가 없는 기업들의 연봉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 경총 조사 결과에 대한 해석이다. "최소한 최저임금 수준 정도는 올려주는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느냐?" 이건 20.1퍼센트다. "다른 곳도 이 정도는 주는데, 너무 하신거 아닙니까"와 같은 다른 기업 눈치보기가 15.2퍼센트다. 이 두 가지를 합치면 35.2퍼센트정도 된다. 이처럼 최저임금과 눈치 보기 같은 것이 그나마 한국 기업의 연봉 결정 과정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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