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6. 01:32ㆍ사회
핵무기 하면 무엇이 생각나냐고 묻는다면, 전 영화『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보여주는 핵전쟁의 이미지 또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핵폭발 시뮬레이션 영상이 생각난다고 답하겠습니다. 지상의 모든것을 파괴하는 하얀마왕같은 이 가공할 만한 핵무기의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핵무기가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에 동의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소유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자 워드 윌슨은 핵무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상당 부분 신화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핵무기에 대한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입니다. 역사적으로 두 발 만이 사용되었을 뿐더러, 2차 세계대전 종결의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무기가 사용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일본이 항복한 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두가지 역사는 강력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워드 윌슨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에드윈 로크의 말처럼, 상관관계방식은 인과관계 가설을 제시하는 데 아주 유용하지만 과학적 증명방식은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상관관계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무기가 일본의 항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윌슨은 여러 사실들을 지적하는데, 핵무기의 도시파괴 능력이 그 전에 실시한 미국 공군의 일본 본토 공습에 비해 압도적이기는 커녕 오히려 낮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일본 입장에선 핵무기의 위력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당시 일본 주요 장성들의 기록을 인용하는데, 당시 일본군 장교들은 핵무기의 위력보다는 기근으로 인한 내부의 봉기를 더 두려워했습니다. 일본군은 핵무기를 맞은 이후에도 긴급회의를 소집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핵무기 사용 이후 일본이 항복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무서워했던 것은 핵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소련군의 참전이었습니다. 소련군이 전쟁을 선포하자마자 일본은 긴급히 회의를 소집했고, 바로 전쟁에서 항복했습니다.
소련의 침략은 외교 전략을 불가능하게 했던 것처럼 군사적 결전 전략을 불가능하게 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일본의 모든 전략적 방안은 물거품이 되었다. 히로시마 원자폭격과 달리 소련의 전쟁 개입은 전략적으로 결정적이었다. - p.85
핵무기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이론 중 하나로 핵 억제론이 있습니다. 핵무기는 전쟁에 사용될 경우 인류를 멸망시킬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에, 핵무기를 서로 가지고 있으면 상호확증파괴를 두려워한 사람들이 전쟁을 할 마음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핵 억제론의 이미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북한의 핵개발을 떠올리게 합니다. 북한이 경제사정과 정치사정이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핵무기를 탐하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핵무기가 그만큼 필요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핵억제는 위기 시에 효과가 있을까 하는 질문에 저자는 부정적인 답변을 합니다. 핵 억제는 이미 여러 번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쿠바 위기, 베를린 위기, 한국전쟁, 중동전쟁 등에서 핵무기는 위기를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핵이론가들은 핵억제가 일반적인 억제보다 더 믿을 만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증거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냉전의 위기 기록은 핵억제가 완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핵억제에 의존해야 한다면, 핵억제는 완벽해야 하기 때문이다. 핵억제가 아주 효과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약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안전이 위험에 처한다면, 핵억제 보장은 항상 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 pp.159~160
사람들이 핵무기의 출력 계산을 오해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핵무기는 여전히 강력한 무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핵무기는 천하무적의 무기도 아니고, 문제 해결에 만병통치약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핵무기가 일본제국이 항복한 것처럼 적에게 충격을 주는 독특한 능력이 있고, 전쟁에서 결정적이며, 특별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인식은 핵무기는 결코 제거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핵무기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게 되자 핵무기는 무기 그 자체로서의 가치보다는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되었는데, 국제사회에서 힘의 화폐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핵무기가 힘의 징표라면, 사물의 실제적인 유용성과는 별개로 유용한 물건이 됩니다.
선택은 드러났으므로 변화는 가능하다. 변화는 총체적 죽음에 대한 단 한 가지 대안이다. 인간 세계를 파괴하든지 또는 좀 더 협동적인 공동체로 변해가든지 조건들은 이미 되돌이킬 수 없게 설정됐다. 현재에 해야될 일은 죽음의 기계를 해체해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죽음을 공들여 만들어 오는 데 낭비했던 부유하고 지적인 사람들의 에너지는 생명을 존중하는 일에 돌려질 필요가 있다. -《원자 폭탄 만들기 2》pp.471~472
핵무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도덕적 측면에서 핵무기를 반대합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핵무기의 유용성을 외치는 현실주의자들의 의견을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핵무기를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현실주의자적 측면에서 핵무기에 의문점을 제기합니다. 핵무기가 그 비용을 감수할 만큼 유용한 무기인가? 핵억제 능력이 평화를 유지하는데 그만큼 효과적인가? 저자의 답변은 핵무기는 아주 위험한 반면, 그만큼 아주 유용하지는 않은 무기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핵무기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신화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사실과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핵 체제를 재고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핵무기는 위력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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