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똥은 왜 국가의 것인가《북경 똥장수》

2023. 6. 15. 11:5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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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포에니 전쟁의 주인공이 한니발인 것처럼, 역사에 관한 서술은 위인 혹은 사건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말한 것처럼,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아래로부터의 역사 또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격동의 20세기 전반의 중국 역사를 다룰 때 보통은 장제스부터 시작해서 유명한 사람들 혹은 사건들이 나열되겠지만, 저자 신규환은 독특한 사람들을 주목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의 하층민이었던, 똥장수들입니다. 똥장수들의 삶을 통해 바라보는 중국의 역사는 또 다른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합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먹고 살기 위해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는 현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농촌 지역이었던 전라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타향살이를 떠나 하층민이 되는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이징의 똥장수 사회도 마찬가지인데, 주로 산둥반도에 살던 산둥인들이 먹고 살기 위해 청나라 시절부터 베이징에 건너가 똥장수가 되었습니다. 똥장수 사회는 일반적인 똥장수와 법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구역을 가진 분도가 있었고, 가장 상위 계층으로 분뇨를 보관할 수 있는 분창을 가진 분창주가 있었습니다. 똥장수 사회는 철저한 계급주의 사회로, 극소수의 분창주들이 대부분의 부를 벌어갔고, 대부분의 똥장수들은 최하위 계층의 삶을 살았습니다.

분창주는 똥장수에게 숙식과 월급을 제공하는 보호관계였으나, 똥장수는 분창주의 일상적인 착취와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똥장수는 베이징 사회의 대표적인 도시하층민으로 그들은 대부분의 소득을 식품비와 연료비 지출에 사용했다. 소득에서 병원비나 약값에 사용할 수 있는 비용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똥장수는 영양결핍과 과로에 의해, 결핵, 호흡기병, 위장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고, 기생충병이나 하지정맥류 등으로 고통받았다. - p.70 

똥장수들은 사회 최하위 계층의 사람들이었지만, 사람이 살아가고 사회가 돌아가는데 필수적인 일을 했기 때문에 하층민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똥장수들은 대부분의 이윤을 분창주들에게 뺏겼지만, 그 부족분만큼 일반 서민에게서 충당했습니다. 똥을 안치우면 아쉬운 것은 시민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시민들을 울며 겨자먹기로 똥장수들에게 필요 이상의 비용을 내야 했고, 물장수 등과 함께 미움을 받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당시 사람의 똥은 단순히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농업에 사용되는 연료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똥을 보관하고 되팔 수 있었던 분창주들은 큰 부를 쌓았고, 몇몇 분창주들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점적 영업권을 이용해서 시민들로부터 웃돈을 뜯어 낼 수 있었던 물장수, 똥장수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날로 커져 갔습니다. 시민들은 상수도, 하수도 관리를 정부가 관리하기를 원했습니다. 신해혁명 이후 등장한 현대국가에게 있어서 위생개혁은 꼭 필요한 과제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상하수도 설비 구축은 재정 부담이 큰 사업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개선이 어려웠고, 장비, 인력, 재정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생개혁은 점점 일정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도시환경은 개선되기 시작합니다.

급수시설의 안전을 강화하고 감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 떠오르는 기술들이 비싸다는 것은 차지하고, 이와 유사한 기술들은 시장 이익이 적으면 상업적으로 개발될 것 같지도 않다. 많은 공공정책 이슈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것은 문제 해결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도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식수 혁명》p.226 

깨끗한 물을 시민들에게 공급한다는 수돗물 시스템과 사회기반시설을 통해 하수를 처리한다는 개념은 물장수와 똥장수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반발이 심해지자 정부는 똥장수들을 회유해 국가기관의 일원으로 등록시키고자 했지만 예산적인 면에서 문제점이 많았습니다. 똥장수들은 유례없는 대규모 시위를 했고, 분뇨처리업 개혁의 추진자였던 시장이 사임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똥장수들은 변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습니다. 똥장수라는 직업은 몰락했고, 하수처리를 담당하는 것은 국가가 맡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똥장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베이징에서 살아갔던 똥장수들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상하수도 체계가 가져다주는 소중함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마실 수 있는 물이 나오고, 변기를 내리면 오물이 사라집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것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특히 도시의 사람들이 그러한데, 서울의 경우 거의 100%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이 갖춰진 것은 몇십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물의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언제라도 생활수준이 수십년 전 수준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깨끗한 물은 생명의 연장 측면뿐만 아니라 삶의 질적인 문제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북경 똥장수는 존재하지 않지만, 북경 물장수는 아직도 존재합니다. 뛰어난 마케팅 전략을 통해 수돗물보다 깨끗하지 않으면서도 수돗물보다 비싼 생수를 파는 물장수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똥장수들의 등장과 몰락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현재 승승장구하고있는 물장수들의 모습을 보는것은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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