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센스 앤 넌센스》

2023. 6. 6. 23:44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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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천동설과 지동설의 논쟁 과정에서 지동설이 승리해 사회를 변화시켰던 것처럼,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이나 방법, 문제의식 등의 체계는 계속 변화합니다. 오늘날 진화론은, 창조설을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반발이 있기는 하지만, 명실상부하게 현대의 패러다임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더이상 받아들일까 말까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진화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입니다. 진화론을 이용하여 인간성을 연구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과학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답변을 했습니다. 그 답변들은 때론 센스였고, 때론 넌센스였습니다.

케빈 랠런드와 길리언 브라운은 인간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진화론이 사용된 여러 시도 중에서, 영향력이 뛰어났던 다섯 가지의 방법론으로 사회생물학, 인간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 방법론의 가정이 지니는 특징들과 개별 접근방법들의 긍정적인 면과 한계를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방법론들은 모두 단점들을 지니고 있는데, 진화론은 때론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면모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윈부터 현대의 진화론자들까지 자신의 이론이 가지는 한계를 인식하고 개선해나가는 모습은, 반증 가능성을 가져야 하는 과학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진화론은 생물학 분야를 떠나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 혁명적인 이론이었지만, 다윈 이후 오랫동안 진화론을 이용하여 인간의 행동과 사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다윈 자신도 유전의 매커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해 평생 동안 자신의 진화론을 더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우생학, 나치즘, 규제 없는 자본주의, 인종주의적 이민정책, 강제 불임수술 등 진화론이 악용된 사례도 상당수 있었지만, 진화생물학자들은 인종차별과 사회적 편견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오늘날까지도 살아남는 이론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윈은 진화를 '사다리'보다는 '가지를 뻗은 나무'로 묘사했다. 그러나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생물학적 진화를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는 과정'으로 오해하여, 경쟁이 장려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사회적 보수주의, 군국주의, 우생학, 자유방임 경제, 규제 없는 자본주의 등과 같은 원칙들을 정당화했다. - p.67

오늘날 진화론의 다섯 가지 주요 방법의 시작은 사회생물학입니다. 사회생물학은 조지 윌리엄스, 로버트 트리버스 등이 개척했지만, 대중들에게 알려진 학자는 에드워드 윌슨과 리처드 도킨스입니다. 도킨스는 사회생물학적 방법론을 인간에게 직접 적용하는데 신중했지만, 윌슨은 과감하고 모험적인 가설들을 제시했습니다. 유전자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그의 방법론은 인문학과 충돌했고, 생물학자, 사회과학자, 인문학자들은 열띤 논쟁에 참여했습니다. 사회생물학이 협동, 양육투자, 여성의 성적 행동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유전자관점, 혈연선택, 진화적 게임이론 등 인간행동을 탐구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아볼 수 있지만, 진화론 이외의 설명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인간행동 연구의 새벽을 열었던 인간사회생물학을 시작으로 그 대안이 여럿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는 인간행동생태학이었습니다. 인류학이 과거부터 가지고 있었던 환경과 생태계가 인간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을 진화론적 접근방법에 도입한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은 환경조건에 대응하여 행동을 바꿀수 있으며, 일생동안 생식 성공률을 최적화하도록 진화했다고 말합니다. 인간행동생태학은 정량적이고 엄격하고 논리정연하며 상당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행동을 이해하는 방법론을 놓고 진화심리학계와 대립해 왔으며, 인간행동생태학은 각계각층의 비난에 휩싸여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했습니다.

인간사회생물학과의 차별화를 추구했던 신진 연구자들은 인간의 심리적 매커니즘에 주목했고, 이들은 진화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게 됩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함에 있어서 행동 수준이 아닌 심리 수준에서 반응패턴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정신을 진화이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으며, 문화, 의사결정, 언어, 임신, 낙인찍기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크게 기여했지만, 빈약한 연구와 근거 없는 서술이 많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인지 프로그램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이 지닌 숙제입니다.

연구자들에 따라 강조하는 항목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이와 비슷한 취미에서, 에릭 올든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완벽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유전 가능한 정보가 심리적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이렇게 구축된 심리적 메커니즘은 환경의 자극에 대응하여 행동반응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적합성 효과가 나타난다." - p.397

다섯 개 학파의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상이한 가설검증 방법은 본질적인 견해 차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어느 부분을 강조하고 중점적으로 다룰 것인지에 대한 의견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방법론을 비판하면서도 활용합니다. 결국 그들은 모두 인간행동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추구하는 진화론자들인 것입니다. 다윈 이후 수백년간 진화론은 많은 도전을 받아왔고, 박해와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진화와 인간행동이라는 분야의 수많은 학자들이 토론하고 또 토론하고,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이해하고, 반증하고 반증한 끝에 진화론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론은 과학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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