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 박연차. 그는 부산에서 사업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부산 중소기업인에 대한 세무조사를 서울지방국세청이 했다. 그것부터 어긋났다. 그래서 박연차 회장의 돈 중 일부가 노 전 대통령에게 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국세청은 어디로 고발해야 했을까? 일반적인 사건이라면 부산지검으로 고발하고 그리로 사건이 가야 했다. 아니면 김해 가까운 창원지검이라도 좋다. 그런데 중요 사건으로 분류되어서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로 갔다. 그래서 대검찰청에서 김해로 소환장이 가고, 노 전 대통령이 서울로 피의자 신문을 받으러 가게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아마 서울을 오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건 정권에서 검찰을 이용해 나를 노리고 들어오는 거구나.' 자신이 풀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불행한 일이 생긴 것이다.
형사사건은 1심에서 단독판사를 만나고, 2심에서 합의부 판사 3명을 만나고, 3심에서 대법관을 만난다. 세 번에 걸쳐 피고인과 국가가 싸운다. 피고인 옆에는 변호인이 붙고, 국가 옆에는 검사가 붙는다. 국가에서 붙이는 검사는 정해져 있다. 즉 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사건이면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맡는다. 2심 서울고등법원 사건이면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맡는다. 3심 대법원 사건이면 대검찰청 검사가 맡는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법원 옆에는 그에 대응하는 검찰청이 있다.
대검에 올라온 사건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3심은 검사가 출석하지 않는다. 그냥 서류만 보고 대법관들이 숙의해서 결론을 내려준다. 검사가 할 일이 없다. 게다가 상고이유서는 이미 고등검찰청 검사가 다 써놓은 상태다. 검사는 또 할일이 없다. 결정적으로 3심은 이른바 법률심이다. 새로운 증거를 제출할 이유도 없고, 제출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1심, 2심이 법 적용을 잘했는지, 그것만 본다. 검사가 증거 수집하느라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대검에서 근무하는 40명 남짓한 검사들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들일까? 바로 대한민국 검찰 전체가 업무를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연구하는 일을 한다. 대검 검사를 연구관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데 대검에서 연구나 기획 업무가 아닌 사건 수사, 다시 말해서 피의자 부르고, 참고인 부르고, 압수 수색 들어가고 등등 증거 수집을 하고 재판에도 들어가는 부서가 있다. 그게 바로 대검 중수부다. 중수부는 3심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다. 1심을 준비하는 곳이다. 강남에서 일어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이 맡는 게 맞다. 그게 1심 대응 검찰청이다. 해남에서 일어난 사건은 광주지검 해남지청이 맡는 게 맞다. 경상남도 김해 혹은 부산에서 일어난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도 마찬가지다. 1심 대응 검찰청이 맡는 게 맞다. 그런데 왜 대검 중수부가 맡은 것일까? 검찰총장의 지휘 아래 직접 수사를 하기 위해서다.
지검 특수부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검 특수부 수사는 지검장이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다. 외압을 차단할 힘이 없다. 예컨대 서울중앙지검장은 중요한 인사를 앞둔 사람이다. 바로 총장 되기 전이다. 그런데 괜히 수사 한 번 잘못했다가 25년 공들인 탑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서는 몸을 사릴 수 있다. 반면 대검의 우두머리인 검찰총장은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다. 눈치 볼 이유가 없다. 게다가 2년 임기가 보장되어 있다. 책임지고 수사를 진두지휘할 자세가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직접 지휘를 받는 수사팀을 두었다. 이게 바로 중수부다.
'내가 책임질 테니까 성역 없이 가라.' 중수부는 경찰은 꿈도 못 꾸는 사건을 다룬다. 국민들이 중수부가 맡아주기를 바랐던 사건도 많다. 부산 저축은행 사건도 그 중 하나다. 또 중수부가 수사해서 국민들의 칭찬을 받은 사건도 많다. 이철희,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은폐 사건, 동화은행장 비리 사건,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하지만 그럼에도 중수부는 이상한 조직이다. 대검찰청이 수사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수부 사건은 주임검사가 사실상 검찰총장이다. 중수부 사건을 시작하는 날부터 검찰총장은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총장이 직접 지휘자고, 담당자고, 이해관계자다. 이해관계를 맺으면 좌우가 안 보인다. 앞뒤만 보이는데, 뒤로 갈 수는 없다. 앞만 보고 간다. 총장이 혼자 결정하고, 지휘하고, 책임진다. 눈물을 머금고 접을 수도 없다.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서라도 외연을 확대하거나, 사안을 축소해서라도 끝까지 갈 공산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수부가 수사를 했으니까, 끝까지 갈 거 아닙니까?"
중수부가 위험한 이유는 이것이다.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포기할 수가 없다. 특히 여론의 관심을 받는 사건은 그렇다. 특가법상 뇌물이 안 되면 사기로, 사기가 안 되면 횡령으로, 횡령이 안 되면 배임으로, 배임이 안 되면 하다못해 탈세로, 성과를 내야 멈추는 차가 중수부다. 차는 잘 달리는데 브레이크가 없다. 그래서 위험하다. 지난 3년간 중수부가 맡은 사건의 무죄율이 30퍼센트가 넘는다. 보통 형사사건의 무죄율은 2퍼센트도 안 된다. 멈췄어야 할 길을 간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사건에서는 게다가 중수부답지 않은 패착을 두었다. 전직 대통령도 재직 시 부정한 돈을 받은 것이 드러나면 수사를 받아야 한다. 법 앞에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수부는 수사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를 하지 않았다. 최근 국회의장이 연루된 사건에서도 검찰은 국회의장 공관으로 방문해서 짧은 조사를 벌인 게 전부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에게는 그런 배려조차도 없었다. 그냥 피의자 대하듯이 했다. 김해에 사는 전직 대통령을 오후 1시에 대검찰청으로 소환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그 시각에 맞춰 새벽에 출발했고, 아마도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했을지 모른다. 그런 다음 대검찰청 입구 포토라인에 서게 했다. 카메라 세례가 터질 때 노 전 대통령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자신은 누구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검찰한테 모욕을 당하고 있는 걸 참기 힘들었다. 거기까지도 좋다. 그런데 그날 오랜 시간을 조사를 하고 나서도, 또 한 달 가까이를 질질 끌었다. 구속할 거면 영장을 청구하든가, 아니면 불구속으로 빨리 기소하든가, 누가 봐도 그랬어야 할 일이다. 영장판사가 보기에 형사소송법상 구속사유가 있으면 구속영장에 서명하고 구속사유가 없으면 영장을 기각한다. 그 판단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은 채 한 달 가량 지나는 동안 언론에는 이상한 정보가 누설되었다. 논두렁에 버렸다는 피아제 시계나 뉴욕에 구입했다는 아파트 보도 등이 있었다. 물론 중수부가 흘린 건 아니다. '검찰 관계자'의 전언이 아니라 '사정기관 관계자'의 입에서 나왔다고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중수부가 피의자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우물쭈물한 게 문제다. 앞으로 누구는 부르겠다느니, 또 안 부르겠다느니, 노 전 대통령 혐의에 대한 보강조사를 계속 하겠다느니.. 사람 앞에 두고 최고 수사기관답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중수부는 대한민국에서 차출된 대표검사들의 모임이다. 한없이 자랑스러운 자리겠지만 동시에 한없는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자리다. 말 한마디도 허술해서는 안 된다. 범죄사실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학적인 결론을 도출할 것이며, 좌고우면함 없이 빠르게 일처리를 했어야 했다. 보통 검사들은 사소한 사건에서조차 그렇게 한다. 그런데 중수부는 그러지 못했다. 다른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게 잘못이다. 사건은 단순하게 풀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공정성에 의심이 간다. 중립성이 훼손된다. 중수부의 단점은 바로 이것이다. 때로는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검찰총장의 이름이 걸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