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안전한, 우리는 위험한《인간이 만든 질병 구제역》
2010년부터 2011년에 한국에서 발생한 구제역 파동으로 300만마리가 넘는 가축들이 도살되었습니다. 구제역은 가축의 식욕과 젖 생산량이 감소하며, 단기간 앓고 회복됩니다. 또한 구제역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열에 의해 쉽게 파괴됩니다. 과연 구제역이란 무엇이길래 그토록 강한 대처를 했던 것일까요. 구제역이란 병 자체만으로 보면 굳이 도살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것은 당연합니다. 저자는 이런 의문에 대해 구제역 도살정책이 구제역이란 자연적 질병 그 자체를 생물학적 견지에서 바라보는 정책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만들어진 정책임을 지적합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구제역은 매우 흔하고, 별 걱정없는 가축 돌림병이였습니다. 1848년의 목축업자 홀 키리가 쓴 글에 따르면 구제역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홍역이나 백일해, 감기처럼 일상적인 질병이 되어 모든 소가 한번은 앓고 지나가는 병으로 생각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농부들이 이익률이나 생산성 등에 덜 민감했을 뿐더러 혼합 영농 시스템의 일환으로 가축을 길렀기 때문에 문제거리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한달도 되지 않아 다시 회복되는 병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 요인들로 인해 구제역은 점차 심각한 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정치적인 이유로는 당시 사회에서 영향력있는 가축 소유주들, 상류층 육종가들과 토리당 의원들은 구제역이 박멸되기를 원했고, 영농환경이 점차 대규모화되고 날씨의 영향으로 불황이 시작되자 경작을 통해 축산에서 생기는 손실을 벌충할 수 없게 됩니다. 그로 인해 구제역으로 인한 식육과 우유 생산 감소가 주목받으며 경제적 중요성으로 부각됩니다.
이러한 도살 정책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반발을 가져옵니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가축이 도살당하는 농부들부터, 지방 당국 등에서는 도살이 아닌 격리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는 사회보장제도가 거의 없던 시설이라 구제역 도살 정책으로 가축을 전부 잃어버린 농부들은 그자리에서 전 재산을 잃어버리고 빈민으로 전락하다 보니 그 저항은 더욱 격렬했습니다. 당시 구제역에 대한 심의회가 시작되자 200~300명의 성난 농부들이 회의장에 들이닥치기도 했습니다.
구제역에 대한 도살정책은 영국의 지리적 환경에도 영향을 받았는데, 유럽 본토 등에서는 잦은 가축이동이 가능해 도살정책이 사실상 의미가 없고 백신정책으로 방향을 돌린 반면, 섬나라인 영국은 도살정책으로도 구제역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제역을 막기 위해선 수입제재를 할수 있음을 의미하고 이것은 정치적으로 큰 무기가 됩니다. 당시 영국에 식육용 가축을 수출하던 아일랜드, 아르헨티나와의 관계에서 이 구제역은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구제역으로 인해 아일랜드의 자치에 먹구름이 끼었고, 아르헨티나와의 관계에서 무역보복이 생겨나는 등의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구제역은 영국에겐 군사 방위적인 요소로도 인식되었는데, 2차세계대전 당시 구제역이 일반화되고 백신정책 위주였던 유럽 본토와 달리 도살정책을 실시하던 영국에게 있어서 구제역 바이러스는, 전쟁에 필요한 식량을 감소시키는 매우 유용한 화학무기로서의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군사적 필요성 외에도 사회적으로도 백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사회적 담론이 형성됩니다. 2001년엔 무려 천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도살되자 농촌 지역사회, 여행 산업계, 상당수의 농민들은 백신을 지지한 반면 전국농민연합과 정부는 여전히 도살정책을 지지했습니다.
결국 구제역이란 질병을 대함에 있어서 도살정책을 실시한 것은, 구제역이 가축을 죽여야 하는 병이라서가 아닌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죽이는 것이 더 이익이였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좀더 수월하게 팔기 위한 청정국 자격을 얻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정치적 알력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사회적으로 도살정책이 이익인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더이상 도살정책이 아닌 백신정책으로의 전환할것을 요구합니다. 세계화된 교역 패턴으로 볼때 도살정책은 이제 비효율적이며, 백신 기술의 발달로 백신 사용에 대한 과거의 기술적, 과학적, 문화적 걸림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001년 구제역 유행에 대한 앤더슨 청문회의 주장대로 우리는 '역사의 실수를 되풀이하도록 운명지어지지 않았다' 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