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조직에서의 순환근무제
공무원은 순환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촌지를 받던 시절 공무원의 순환근무제는 동일 보직으로 장기 근속하며 발생하는 병폐를 해결할 효과적이면서 거친 수단이었다. 거친 방법은 장점 못지 않게 많은 단점을 가져오기 마련이니, 지금도 공무원 순환근무제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논의를 거치고 있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순환근무제는 단점도 많지만 효과도 있기에 아직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 외의 작은 조직에선 순환근무제의 장점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순환근무제의 장점은 업무의 공정성과 다양한 경험을 통한 인재양성이지만, 조직 규모와 역량이 높지 않은 이상 순환근무제는 단점만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비영리법인(협회 등)에서의 순환근무제다.
S협회의 홍보팀장은 수십년 동안 홍보업무만 전담한 전문가로, 업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고 모르는 기자가 없었다. 나이는 아직 50대에 불과했고 자신의 업무에 불만이 없었으며 홍보 성과도 좋았다. 협회의 홍보역량은 향후 10년은 아무 걱정 없어 보였다.
그런데 정부기관에서 상근부회장이 내려왔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공무원이었던 상근부회장은 그야말로 아무 이유 없이 팀장급의 보직을 순환시켰고, 홍보팀장은 교육팀장으로, 교육팀장은 총무팀장으로, 총무팀장은 홍보팀장이 되었다.
업무는 어떻게든 돌아가겠지만 홍보팀장이 수십년간 쌓은 인맥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두꺼운 명함첩을 인계했지만 그것이 실제 네트워크로 이어질 일은 없었다. 업계에 부정적인 언론기사가 났다. 예전같았으면 홍보팀장이 알아서 문구의 선을 조절했거나 기사를 내려줬겠지만, 새로운 홍보팀장은 그럴 수 없었다. 상근부회장은 기존보다 못한 성과에 화를 냈다.
G협회의 직원들은 전부 40살 미만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신생 협회였을까? 역사가 40년이 넘은 협회였다. 그런데 어떻게 전부 젊은 사람들만 있었을까? 순환근무제 덕분이었다. 조직 인원이 적어 한 업무를 한 명이 전담해서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1년, 길어야 2년마다 보직을 변경시켰다. 내부 인수인계 시즌마다 난리가 났다. 전문성은 쌓이지 않았고 야근만 늘었다. 보직이 변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기존 업무를 수행하던 직원도 있었다. 결국 오래 다녀야 대리였다. 조직 역량은 초보적인 수준에 그쳤고, 회원사와 네트워크를 쌓을 수도 없었고 보도자료를 하나 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G협회는 지금까지 퇴직 공무원이 상근부회장으로 내려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F협회는 겉으로 보기엔 나름 적당한 피라미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피라미드가 위로 이동하지는 않았다. 위는 고정이었고 아래와 중간만 계속 교체됬다. F협회는 경력직 팀장들을 뽑아 사업을 유지했으나 사업만 끝나면 보직을 변경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자 이직한 팀장들은 처음에는 업무 걱정을 하고, 두번째는 협상을 시도했으며, 결국 조용히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만약 10년이 지나 F협회의 위가 전부 은퇴할 때가 되면 어떻게 될까? 수십년 유산을 받아줄 사람을 키우지 못한다면 F협회의 역량은 추락할 것이고 회원사들은 협회를 떠날 것이다.
이러한 조직에서의 사례는 순환근무제가 조직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이유 없이 시행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먼저 순환근무를 통해 대상자의 커리어와 역량을 더 키우겠다는 조직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다면 단순히 업무부담이 증가하는 것에 불과하며 조직에서 나가라는 시그널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간부로 키우고 싶다고 하더라도 조직 규모에서 그 업무량을 받쳐주지 못하다면 과중한 업무량을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G협회의 사례에서 보듯이 업무 담당자가 한명씩밖에 없는 경우 업무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기간에 걸쳐 주 업무와 부 업무로 분장을 나눈 뒤 천천히 업무를 변경시켜야 한다. 순환근무로 인한 업무변경은 업무성과 감소로 이어질 확률이 높으므로 이에 대한 예측도 필요하다. 특히 기존에 좋은 성과를 내고 있던 조직원을 변경시켰을때는 불합리한 것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상담 후에 보직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조직이 개인상담도 없이 명령식으로 통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많은 혼란과 인력 이탈로 이어진다.